이십여 년 전 어떤 일본인이 일본의 역사에 관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현대사회에 중요한 역사적 업적을 남긴 무명인을 기리는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 그 무명인은 바로 'TV 쇼'를 만든 프로듀서였다. 쌀을 세는 단위인 석(石)을 영주의 징집에 따라 언제든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장정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먹는 군량(軍糧)으로 계산한 것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쇼'는 '보이는 일이나 보여주는 구경거리'를 통칭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갖가지 형태와 종류의 쇼로 가득하다. 패션 쇼, 레이저 쇼, 마술 쇼, 퀴즈 쇼, 정치 쇼, 이런저런 것을 버무린 버라이어티 쇼가 있고, 속어(俗語)로는 거짓이 쉽게 드러나는 억지스러운 쇼를 '생쇼'라고도 한다. "쇼 하고 있네"는 "소설 쓰고 있네"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면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나의 향상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오늘날 'TV 쇼'는 이십여 년 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고 그 중 상당수는 '예능'으로 진화했다. 생존경쟁을 통해 최후의 1인을 선정하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포함한 '리얼리티 쇼'와 유명인이 나오는 '토크 쇼' 같은 게 대표적이다. 이런 쇼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경험을 보여주고 좀처럼 털어놓기 힘든 속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화제는 바로 다음날 인터넷과 신문 지면에 중요한 정책결정이나 강력범죄보다 훨씬 더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그런 쇼가 성공하는 이유는 대중의 관음증(觀淫症)을 채워주어서라든지, 삶이 잔인한 경쟁세계라는 통속적인 믿음을 확인시켜주고 패배자들의 흐느낌과 자기고백이 자신은 그보다 낫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라든지 하는 해석이 나온다. 아무튼 '쇼'와 '예능'은 정복왕(王)을 연상케 하는 기세로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부문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부분의 쇼는 친숙하고 쉬운 언어와 문구, 자극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쇼를 볼 때 머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쇼는 누구나 이해 가능하다. 쇼의 출연자들이 유명인이고 그들이 진실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사람들은 그들과 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명인들이 말하는 방식은 유행어가 되어 대중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끼어든다. 쇼가 끝날 때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야 하지만 그것이 주는 좌절감과 열등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쇼를 찾아 채널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중독(中毒)의 메커니즘 속에서 쇼와 현실을 구별하는 일이 점점 어렵게 된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지적 도구이고 인류를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만든 무기였다. 하지만 TV 쇼에서 쓰이는 언어는 초등학생 어린이와 부모가 다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하향 평준화되어 있다. 이미지로 대체 가능한 것은 모두 바뀌었다. 복합적인 현실과 심도 있는 사고를 반영하는 성인의 언어, 단어와 문장이 가진 지적인 기능은 쉽고 자극적이고 파편화된 '쇼 언어'에 밀려나고 있다. '쇼 언어'를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뜨기가 되고 시류(時流)에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미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분석한 '미국의 굴욕'을 쓴 크리스 헤지스에 따르면 하루 평균 4시간씩 TV를 시청하는 미국인의 3분의 1이 문맹(文盲)이거나 간신히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다. 2007년 미국 전체 가구의 80%가 단 한 권의 책도 사거나 읽지 않았다. 2010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은 6.5명이었다. 2009년보다 0.7명가량 줄었다.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쇼와 '쇼 언어'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진화하고 있고 일상과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서울 정도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쇼가 아닌 사실이나 뉴스조차 쇼를 닮아간다. 연출이 진실을 대체하고 진지함을 현혹이 대신한다.
문장은 인간의 언어가 가장 고도로 정련된 지성의 결정체이다. 문장을 쓴 사람과의 대화는 지적 수준을 높이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가능하게 한다. 문장으로 교육받고 각성된 사람은 현실이 어떤 것인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성숙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지적 언어인 문장과 문장의 결과물인 책은 적어도 남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느낌을 내 것인 양 혼동하게 하지는 않는다.
문명(文明)과 문화(文化), 사람을 세계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인문주의(人文主義)는 모두 '글월[文]'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류의 어둠을 밝힌 문명이 우리 스스로의 눈을 찔러 맹목으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집단적 문맹, 우중화(愚衆化)된 사람들 뒤에 무책임한 선동정치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나는 본다.
Sunday, November 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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